축구공은 둥글다. 왼쪽에 치우치거나 오른쪽으로 쏠리지 않는다. 땀 흘린 자에게 과실을 안겨준다. 그런 점에서 축구공은 ‘공정’과 ‘정의’의 아이콘으로 삼을 만하다. 엊그제 축구 스타 손흥민이 유럽 프로축구 무대에서 한 경기 4골을 터뜨렸다. 손흥민의 ‘포트트릭(FOUR 해트트릭)’ 소식에 대한민국의 모든 축구팬이 열광했다. 축구 경기에 좌우가 어디 있으며,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까. 어쨌든 왼발로 2골, 오른발로 2골을 터뜨린 손흥민의 물오른 기량은 전 세계 축구 팬의 찬사를 받을 만했다.
손흥민의 기분 좋은 소식을 접하면서 축구공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축구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건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그라운드에서 펄펄 날았다. 덩달아 국민의 가슴에도 피가 펄펄 끓었다. 어디선가 “대~한민국!”이란 외침이 들리면 모든 이가 목이 터져라 따라 외쳤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됐다. 남자도, 여자도, 어른도, 어린아이도 똑같이 한마음이었다. 시청 앞 광장엔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흔드는 태극기의 물결이 장관을 이뤘다. 그해 여름, 광장엔 기쁨과 희열이 가득했다.
축구 열기에 불을 붙인 건 히딩크 감독이었다. 그는 고독한 승부사였다. 스타플레이어를 쥐락펴락하는 심리전의 달인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촌철살인을 날리는 언어의 마술사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히딩크는 타성에 젖은 스타를 배제했다. 무명이라도 체력이 뛰어나거나 잠재력이 있는 선수를 과감히 발탁했다. 당시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리던 이동국을 대표팀에서 떨어뜨린 건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다. 긴 머리를 휘날리던 스타플레이어 안정환에겐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빼들었다. 고급 차를 몰고 다니던 안정환을 노골적으로 외면했다. 축구선수가 아니라 연예인에 가깝다는 독설을 퍼붓기까지 했다. 무명에 가깝던 박지성을 발굴해낸 것도 히딩크였다. 체력이 뛰어난 그를 조련한 끝에 스타 플레이어로 키워냈다.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외모지만, 그라운드에 우뚝 선 그의 호령은 가을날 서리 같았다.
“골을 넣지 못하는 선수는 책망하지 않지만, 공이 빗나갈까 두려워 슈팅조차 시도하지 않는 선수에겐 책임을 묻겠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평가전에서 시원찮은 성적을 거두자 축구 팬과 언론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는 본선이 열리는 6월에 제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장담했다. 선수들에겐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정신력을 일깨웠다.
“정신력이란 이를 악물고 쓰러질 때까지 뛰는 과도한 투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정신력이란 자신이 가진 기량과 체력을 90분 동안 효과적으로 분산해 소모하는 능력을 말한다.”
출처: 중앙일보, 정제원기자(2020.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