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든 보든, 축구경기는 신난다. 공간과 날씨가 문제다. 그래서 실내축구를 고안했다. 1930년 남미 우루과이에서 ‘풋살(futsal)’이란 이름으로 공식대회가 열렸다.
'Futbol’과 ‘salon’이 합쳐진 말이다. 1987년부터는 FIFA에서 공인 국제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대략 20mX40m 정도의 공간만 필요하니 청소년들의 ‘동네 스포츠’로 각광을 받았다. 날씨 좋은 남미에선 ‘실내’보다 ‘실외’가 대세를 이뤘다. 국제대회 우승은 브라질이 거의 독식했고, 펠레, 지코, 소크라테스 등 대스타들이 어린 시절 여기서 실력을 키웠다.
▦ 장애인 선수가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것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였다. 한쪽에 의족을 착용하고 미국 국가대표 체조선수로 출전했다. 오른 팔이 없는 헝가리 사격선수는 2회 연속 출전했고, 소아마비 장애인 덴마크 선수는 1952년 헬싱키 대회에서 마장마술 분야 은메달을 획득했다. 장애인만을 위한 올림픽은 2차 세계대전 후인 1948년 런던 대회 때였다. 참전용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운동회’ 형태로 개최됐다. 현재 하계올림픽과 함께 열리고 있는 패럴림픽(Paralympic)의 출발이었다.
▦ 2004년 아테네 패럴림픽에서 시각장애인 축구대회가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풋살경기장에서 열렸다. 기본적으로 실내축구 규칙을 준용한다. 장애인 선수 4명이 공격과 수비를 하고, 골키퍼는 비장애인이 맡는다. 축구공은 내부 6군데에 캡을 부착, 그 속에 구슬을 넣어 공이 움직이는 속도 방향 거리를 청각으로 가늠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골키퍼나 코치(가이드)가 손뼉과 목소리로 선수들에게 공의 위치를 알려준다. 필드의 선수들은 공정성을 위해 반드시 안대를 착용해야 한다.
▦ 거스 히딩크 전 한국축구국가대표 감독이 경기 용인시와 함께 시각장애인 전용 축구장 ‘드림필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풋살경기장에선 장애 아동과 저소득층 어린이들의 꿈도 함께 익어갈 것이다. 히딩크 전 감독은 이미 2007년부터 국내 13곳에 드림필드를 건립해 왔으며, 평양과 개성에도 건립을 추진하기 위해 최근 북한을 다녀오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국민이 보여준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그는 말한다. 참으로 고맙고 멋있는 사람이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