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리더]①이영표가 겪은 히딩크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겠다"

 현재 KBS 축구해설위원인 이영표. 그는 히딩크와 허정무를 최고의 리더로 꼽았다./조선일보DB

현재 KBS 축구해설위원인 이영표. 그는 히딩크와 허정무를 최고의 리더로 꼽았다./조선일보DB

현재 KBS 축구해설위원인 이영표는 선수 시절 200여 명의 지도자 밑에서 축구를 했다. 그중 130명 정도가 외국인 70명 정도는 한국인 지도자였다. 그는 많은 리더를 경험하면서 감독의 말 한마디가 선수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리더십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간혹 경기가 끝나고 이렇게 말하는 감독이 있다. “내 훈련, 전술은 완벽했다. 그런데 선수가 따라주지 못했다.” 전술이 완벽했다 해도, 선수가 그걸 수행하지 않았다면 무슨 소용인가. 축구 안에서 리더십은 감독이 원하는 휘황찬란한 전술이 아니다. 사소한 전술이라도 선수들이 그것을 필드에서 시행하게 만드는 힘이다.

축구는 벤치에 누가 앉아 있느냐로 승패 결정 

“똑같은 구성원이 똑같은 상대와 똑같은 경기장에서 경기해도 벤치에 누가 앉아있느냐에 따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고 이영표는 말한다. 모든 선수는 감독을 의식하고 경기를 한다고. 누가 계속 뛰고 누가 당장 나와야 하는지 결정하는, 감독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표가 내 인생의 리더로 꼽는 사람은 히딩크 감독이다. 그가 기억하는 히딩크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는 히딩크와 월드컵 국가대표팀에서 2년, 네덜란드 PSV팀에서 3년을 지냈다. 프로 활동 14년 중 5년을 함께하면서, 왜 그가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감독인가를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개막 이틀 전 그는 종아리 부상을 했다. 12cm가 찢어졌고 3개월 치료 진단이 나왔다. 모든 축구 선수들에게 꿈의 경기로 불리는 월드컵, 게다가 평생 한 번 있는 한국에서의 월드컵 기회가 박탈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히딩크 감독이 말했다. “나는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히딩크는 팀 전체에 배정된 네덜란드 출신 피지컬 트레이너 2명 중 1명을 그에게 붙여서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재활을 돕도록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목발을 짚고 다니던 그가 일주일 만에 포르투갈 전에서 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어시스트한 골을 박지성 선수가 받아넘기면서 역사적인 16강 진출이 뚫렸다.

크리스천이었던 이영표는 경기장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당시 그 장면이 100여 개국에 생중계되어 감동을 주었다.

 전 국가대표 축구 감독 거스 히딩크. 히딩크는 감독이 되기 전 장애인 보육 교사로 일했다./조선일보DB

전 국가대표 축구 감독 거스 히딩크. 히딩크는 감독이 되기 전 장애인 보육 교사로 일했다./조선일보DB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리더의 결정적 한마디가 있다(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포함해서!). “경기가 시작되기 전 라커룸의 분위기만 봐도 성패를 가늠할 수 있다”고 이영표는 말한다. 약팀을 만나면 이긴 것처럼 활기차고, 강팀을 만나면 이미 진 것처럼 풀이 죽어 있다. 어느 경우든 히딩크가 라커룸에 들어와서 5분 스피치를 시작하면 달라진다. 개개 풀린 눈이 정리되고, 두려워하던 눈빛에 평온이 찾아든다.

실수나 다툼 등 감정이 앞서는 짧은 순간에 히딩크 리더십 빛을 발해

팔로워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감독이 웃어주거나 어깨 한 번만 쳐주어도 힘이 나서 충성심을 보인다.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느냐, 그런 척하느냐는 감독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딩크의 리더십은 감정이 앞설 수 있는 짧은 순간에 더 빛을 발했다. 네덜란드 PSV에서 한 선수가 중요한 경기에서 상대를 발로 차서 즉시 퇴장을 당했다. 한국적 사고로는 팀 전력에 큰 손실이 왔기 때문에, 감독이 징계를 내리거나 크게 화를 낼 상황이었다. 그런데 히딩크가 그 친구를 불러서 “일주일 휴가를 줄 테니 가족들과 쉬고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 선수는 휴가를 다녀온 후, 정말 최선을 다해서 팀에 큰 전공을 세웠다.

한번은 선수끼리 다툼이 있었다. 히딩크가 한 선수를 나무랐더니, 그가 감독에게 도전했다.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하극상’으로 몰렸을 터인데, 히딩크는 그 선수의 어깨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거야! 경기장에서도 그렇게 해야 해. 나한테 표현한 것처럼 상대에게도 그렇게 해다오!”

네덜란드 활동 시절 히딩크 리더십은 매 순간 이영표에게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다.

히딩크 감독은 헤어질 때도 이영표에게 감동을 주었다. 네덜란드 PSV에서 3년간 선수 생활을 하던 이영표에게 2005년 이적 기회가 왔다. 6개 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고 그중 영국 토트넘으로 최종 결정을 한 후 히딩크에게 얘기했다.

당시 바이아웃 조항 때문에 3백만 유로만 제시하면 이영표가 상대 팀으로 이적이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히딩크는 “너의 시장 가치는 8백만 유로이니 그건 손해”라는 입장이었지만, 이영표는 이영표대로 자신의 꿈을 찾아 토트넘으로 이적을 원했다.

당시 이영표는 감독을 찾아가 얘기했다. “내 인생의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당신이 원하면 가지 않겠다. 못 가게 되더라도 나는 여기서 다시 최선을 다할 것이다.” 히딩크는 그에게 네덜란드 국가대표 톱3에 해당하는 맥시멈 개런티 계약서를 주었다. “너한테 줄 수 있는 최고”라는 말과 함께.

그랬던 히딩크는 정작 이적 시장이 닫히기 이틀 전, 이영표를 불러 포옹하며 말했다. “너, 가라!” 히딩크는 이영표를 잡을 권리도 이유도 있었지만, 리더인 동시에 인생 멘토로 그를 놓아준 것이다.

한국인으로 이영표가 꼽은 최고의 리더는 허정무 감독이다. 대학교 3학년 때 이영표는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국가대표팀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테스트 신분으로 명지대학교와 경기를 치렀는데, 대표팀이 이영표 때문에 전반전에 한 골을 먹고 말았다. 잘해야겠다는 과욕이 부른 실수였다.

허정무의 ‘뛰어!” 한마디에 심장이 다시 뛰었다

 히딩크는 칭찬을 해야 잘 하는 선수와 압박을 해야 잘하는 선수의 성향을 구분해서 상대했다./조선일보DB

히딩크는 칭찬을 해야 잘 하는 선수와 압박을 해야 잘하는 선수의 성향을 구분해서 상대했다./조선일보DB

그는 벤치에 앉아 “나는 이제 끝났다”고 자책했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경기장이 있던 울산에서 서울까지 뭘 타고 가야 하나만 생각했다. 후반전 휘슬이 울리자 허정무 감독이 그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야 인마! 뭐해? 안 뛰어?”

“뛰어!”라는 말은 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완전히 새롭게 세팅됐고, 후반전엔 골까지 넣으며 경기를 완전히 장악했다. 허정무 감독은 끝났다고 생각한 그의 닫힌 마음을 다시 열어,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3개월 뒤에 이영표는 국가대표가 되고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대표팀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영표가 생각하기에 “축구는 냉정한 스포츠”다. 결과도 평가도 빠르다. “너 때문에 이겼고, 너 때문에 졌다”가 명확하다. 오늘 이겨도 내일은 진다. 축구 선수는 잠깐의 성취감과 매일 이어지는 패배감 속에 산다. 이영표는 축구 인생에도 결정적 순간이 있다고 한다. 중요한 스카우터가 선수를 보고 있을 때다. “이거 아니면 나는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 경기에서 이영표는 번번이 졌다. 팀이 이겨도 자신이 졌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다.

그러던 중 영국에서 어떤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승승장구할 수 있니?”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축구 인생은 실패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매번 지다가 잠깐 이기고, 그 잠깐의 승리로 겨우 연명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타인의 시각에서 보면 그는 ‘실패 없는 인생’이었던 것이다.

이영표가 내린 결론은 성공도 성공이 아니고 실패도 실패가 아니라는 것. 어떤 이는 성공에서 시작해 실패로 끝나고 어떤 이는 실패로 시작해서 성공으로 끝난다.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반대말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앞으로 나아가는 접속사일 뿐.

그는 요즘도 히딩크의 리더십을 생각한다. 히딩크는 훌륭한 축구 선수는 아니었다. 은퇴도 일찍 한 편이었고, 감독 자리를 찾지 못해 2~3년간 장애아들의 보육교사를 했다. 아픈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는 일이었다.

히딩크 리더십은 상대의 마음 읽는 일대일 리더십

그런 경험 덕에 리더로서 히딩크는 항상 상대의 형편과 마음을 읽었다. 놀랍게도 그의 리더십은 일대일 리더십이었다. 이영표는 히딩크가 현장에서 어떤 선수에겐 엄하고, 어떤 선수에겐 관대해서, 차별 대우를 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차별이 아니라 배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칭찬해야 잘하는 선수와 압박을 해야 잘하는 선수의 성향을 구분해서 상대했던 것이다. “나는 한 명이고 너희는 여럿이니, 너희가 나한테 맞춰야지”라던 보통의 한국 감독들과는 마음의 출발이 달랐다.

이영표가 경험한 히딩크는 리더로서 인정받으려는 생각에 매몰돼서 팀원들을 다그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팀원들의 성공이 곧 조직과 자신의 성공임을 알고, 팀원들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았던 우리들의 진정한 리더였죠.” 이영표는 그리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